나의 이야기

신앙의 유산

검선 2012. 4. 10. 21:11

 

  신앙의 유산    

   

 우리 집안은 5대째 성공회를 섬기고 있고, 나는 그 중간에 해당되는 3세대에 속한다.

나의 선대 분들은 모두 둘째라면 서러울 정도의 돈독한 신앙을 가졌다. 우선, 6.25동란 당시 남하 하자는 주위의 권고를 단호히 뿌리치고, “한 명의 신자라도 남아 있으면 교회를 지키겠습니다.“하고 평양에서 한 발짝도 옮기지 않으신 나의 할아버지 신부님(그 당시 이북 총감사제)은 결국 종교의 자유가 박탈당한 북녘 땅에서 고난을 당하다가 언제 어떻게 운명하였는지 알 길이 없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으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충실한 목자가 되고자 기꺼이 목숨을 바치셨다고 생각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나의 부친을 포함한 2세대 형제분들 또한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따르는 믿음의 열정이 대단하였다. 그 중에는 남편을 사제로, 자식을 주교로 두며 평생을 성공회에 바친 분도 계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내 부친에 관한 것만 생각해 보기로 한다.


 한 평생 교육자의 길을 걸으신 나의 부친께서는 근무지에 성공회 교회가 있을 경우에는 말할 나위도 없으려니와, 혹여, 교회가 없을 경우에도 결코 기도생활을 멈추지 않으셨다. 예를 들어, 성공회 교회가 없는 파주 군의 어느 DMZ 근처 시골학교에 근무한 적이 있는데, 일요일 마다 혼자 어디엔가 다녀오기에 무척 궁금해 하였더니, 나중에 알게 된 바, 미군 영내에 있는 교회에  다닌 것이었다. 영어로 드리는 성찬례였기에 불편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터인데도 말이다. 그러한 것을 나도 본받게 되었는지, 군복무 시절이나 해외에 체류할 때, 성공회 교회가 없는 지역인 경우, 천주교 성당을 찾아 미사에 참석하여 신부님께 성공회 신자임을 밝히고 영성체를 한 적이 많았다.

  

부친께서 8ㅇ세 후반에 들어 거동이 불편하게 된 이후에는 교회를 못 나가게 되니, 어머니와 같이 부부가 다정히 하루 세 번의 성무일과를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기도 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감탄하였고, 하도 손을 타서 많이 너덜너덜 하게 된 그 기도문을 보고 감동받았다.

나의 부친은 일반 사회인으로서의 처세는 별로였는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신앙인으로서는 귀감이 되는 분이셨던 것은 틀림이 없다. 세상사에 무관심하여 돈과 명예, 권력 따위는 탐하지도 않았고, 청빈한 생활을 영위하며 오직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생활을 하였다. 그 결과 우리 자식들은 재물로의 유산은 별로였고, 대신, 그보다 훨씬 값진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게 되었다. 성직자와 교육자의 후손인 우리 형제들은 비록 가난하게 자랐으나 주님의 은총 가운데 사랑을 듬뿍 받으며 귀중한 신앙을 유산으로 傳受(전수)한 셈이다.


 나의 부친께서 이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에 올라 간지 어느덧 3년이 흘렀다.

4년 전 부활주일에는 우리가 고생한다며 한사코 마다하는 것을 무릅쓰고 가족 몇 명이 휠체어를 동원하여 부활 감사 성찬례에 참석케 하였더니, “마치 내가 부활 한 것 같다”고 좋아하였는데, 그 이듬해 부활 주일을 사흘 앞두고  그만 운명 하셨다. 돌이켜 보면, 예수님의 생을 닮고자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애쓴 신앙인 이셨던 것 같다. 나는 예수님을 닮는다는 것은 언감생심인 터라 육신의 아버지라도 닮아 보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어림도 없다. 이래가지고서야 내 후손들에게 선대로부터 이어온 신앙의 유산을 제대로 이어받게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더구나, 우리 보다 하느님을 먼저 영접한 선진국의 교회에 가보면 젊은이들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연세 많은 노인들만 계신데, 우리도 그들을 닮아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우리 자식들도 점차 교회를 멀리 하고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면 어쩌나 은근히 염려된다. 아무튼 힘자라는 데까지 모범을 보이고 노력하여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의 유산을 그들에게도 대물림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할 작정이다.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부친을 배우고 닮고 싶은 것에는 신앙 외에, 詩(시)에 대한 것도 있다. 그 분은 南村(남촌)이라는 아호를 가지고 시 작품을 많이 남겼고, 몇 편의 시에 차남인 나를 “둘째 놈”으로 등장 시켜주기도 하였는데, 그 답례로 山(산)이라는 제목으로 시를 만들어서 읽어 드렸더니 환하게 웃으며, 그렇게 좋아 하시던 모습이 엊그제 같이 눈에 선하다. 그 시를 여기에 소개해 본다.


                   山

      옛날 사진 속 젊은이

         영락없는 그레고리 팩

         영국신사, 가수, 바보로 불리며

         평생 교단을 지킨

         이젠 바보만 남았노라 탄식하는 분


         믿음 소망 사랑 잔잔한 미소에 담아

         영적 삶의 향기 그윽이 뿜으시는 그분

 

         시인으로도 살았다

         바윗덩이 짐 어머니에게 지워놓고


         미수(米壽) 넘어 망백(望百)에 이른 지금

         거동만 좀 불편할 뿐

         생각의 날 무디지 않다

         몰래 감추어 놓은 시에 담긴

         야릇한 로맨스

         짓궂은 추궁에 홍당무 되어

         다만 상상속의 여인이라나? 


         유언인양 *‘나의 마지막 인사’ 시 한 수

         진즉 던져 놓고

         이제 그만 불러 주십사! 간절한 기도

         먼 곳 **큰 산, 큰 물 그리움인가


         지성으로 키운 다섯 그루 소나무

         금강송이라 칭하는 당신

         우리 곁 든든한 산그늘로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註(주): * 아버지의 시 제목

                  ** 평양에서 순교하신 이원창(미가엘)신부님


         주여! 부활을 믿고 떠나가신 저의 부친을 기억하소서.


         2012년 4월 10일

       

         백천(白川) 이영순(사무엘 대학로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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