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내 생애 두 번의 낭패

검선 2010. 1. 6. 22:42

내 생애 두 번의 낭패


  나는 평생을 살면서 크고 작은 실수를 수없이 저질렀지만 그중에서도 뼈아픈 실수가 두 번 있었다. 그 첫 번째가 시골 벽촌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서울에 올라와, 그 당시 소위 일류중학교 중 하나였던  서울 XX중학교 입학시험에 안타깝게도 낙방한 것이었다. 서울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더라면 아마 별 탈 없이 합격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왜냐하면, 내가 졸업한 시골 초등학교가 있는 파주 군에서 실시한 학력경시에서  군 전체 2등을 하여 상장과 함께 부상으로 벼루와 묵을 받은 경력도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시골의  조그마한 학교였지만 도지사상을 타고 졸업하기도 하였다. 당시에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시골과 서울의 학력격차가  얼마나 심각 했는지 알만하다. 마음에 들지도 않는 서울 변두리의 삼류 중학교를 3년씩이나 다니면서 느꼈던 정신적 고통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인생 첫 걸음의 실패로 인하여 어린 내가 받았던 가슴의 상처가 얼마나 컸었던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일이다.

  나를 더더욱 슬프게 한 것은  일류학교 학생과 삼류학교 학생에게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었다. 나의 자격지심 탓도 있었겠지만 바라보는 눈길부터 다르게 느껴졌다.

  하여간, 나는 중3 당시에 대학입시를 앞둔 고3때보다도 더 열심히 공부한 끝에, 그 당시 명문이었던 서울의 경복고에  들어 갈 수 있었다. 모두 540명(아홉 반)중, 480명(여덟 반)은 본교 출신을 뽑았고, 타교출신은 겨우 60명(한 반)만 뽑았다. 타교생간의 경쟁률이 약 10대1 정도 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므로 좀 과장하여 말하면, 나는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만큼이나 어려운 입시경쟁을 뚫고 합격한 셈이었다.

  하지만 한창 성장할 나이에 앉은뱅이 책상에 쪼그린 채 공부하느라 그랬었던지. 성장이 그만 중단되어 지금의 키는 중학교 2학년 때의 키 그대로다.

  어찌되었거나 내 생애 처음의  큰 실수는 3년간의 절치부심 끝에 만회되었고, 부모님의 체면도 세워드릴 수 있게 되어, 천만 다행이었다. 그로부터 3년 후 서울상대에도 당당히 합격함으로써 생애 첫 번째 관문에 실패한 나는 패자 부활전에서 두 번씩이나 통쾌한 히트를 치며 명예회복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두 번째의 큰 실수가 처음의 그것으로부터 정확히 40년 지난 후 또 한 차례 발생하게 될 줄이야. 동부그룹을 명퇴하고, 우여 곡절 끝에 겨우 근무하게 되었던 한라중공업이, 내가 입사한지 일 년도 채 안되어 IMF 한파를 견디지 못하고 그만 은행관리로 넘어가게 되면서, 나는 또다시 명퇴를 맞게 되었다.

  재수 한 번 안 해본 나는 집에서 할 일 없이 노는 것에 적응이 되지 않아 애를 태우고 있던 중, 마침 일간신문에서 채용광고를 보게 되었다. D환경이라는 회사였는데, 광고문을 보니 굴지의 D그룹 관련사로 주로 기계 설비를 취급하며 해외에도 수출하는 회사로 선전되어 있었다. 나는 해외 건설업 수주업무에도 경험이 있고, 플랜트 수출 경험도 있고 하여, 자신을 가지고 입사에 응모 하였다. 잘 알아보지도 않고 덜렁 입사하고 보니, D그룹에 근무하였던 사람들이 설립한 방문판매 회사였고, D그룹과는 무관하였다. 어찌 되었거나 별달리 할 일이 없었던 나는 그 일이라도 열심히 하고자 발 벗고 나서게 되었다. 평생 영업업무로 잔뼈가 굵은 나는 자존심과 체면도 불사하고 가장 친한 친구들부터 공략하기 시작했는데, 죽마고우들은 거의 모두들 싫은 내색 하나 없이 백만 원에 가까운 가전제품을 선뜻 구매해 주었다. 역시 좋은 친구들을 많이 가졌구나 하며 내 자신이 자랑스럽고 뿌듯한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몇몇 친구는 계약금을 선불하고는, 며칠 후에 연락하기를 미안하지만 마누라가 반대하여 도저히 않되겠으니 계약을 취소해야겠다며, 계약금은 그냥 용돈으로 쓰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막 무가네로 돌려받지 않겠다는 계약금을 기어이 반환해 주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나의 그 알량한 자존심나마 지킬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방문판매 영업을 하면서 전에는 알지도 느껴 보지도 못했던 세상사와 인간사를 많이 공부하게 된 것도 큰 수확이라면 수확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영어시간에 배웠던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다(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 라는 것이 그렇게 가슴에 와 닿을 수가 없었다.

    어려움을 닥쳐보니, 고교동문, 대학동문, 직장동료 중 뭐니 뭐니 해도 고교 동기동창생들이 으뜸이었다. 어떻게 보면 혈육보다도 더 낳은 것 같았다. 많은 친구들이 저놈이 얼마나 어려우면 좋은 학교, 좋은 직장 다니던 놈이 자존심 다 버리고 저러고 다닐까 생각하며 도와주었을 게다. IMF가 불러온 여파가 결코 남의 일만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을 터이고 ...............

  이런 생각을 갖는 자체가 옳은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사람들의 반응을 나름대로 분석해 보면, 대체로, 자라난 지방에 따라, 직업에 따라, 사업가냐 월급쟁이냐에 따라, 동문도 고교냐 대학이냐에 따라, 혈육도 남자형제냐 여자형제냐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또한 재미있는(?) 사실 중 하나는, 나를 도와준 친구들은,  어떻게 그 녀석이 그러한 일을 그렇게 용감히 하고 다닐 수 있느냐며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대단하다는 평들을 하여 준 반면, 도와주지도 않은 친구들은 내가 남들에게 피해를 주고 다닌다고 오히려 비난 하는 편이었다.

  죽마고우의 우정으로 내청을 들어준 친구들에게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한 이들 모두에게 커다란 부담을 느끼게 하였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불행하게도 나에 대한 이미지가 알게 모르게 상당히 추락한 후였다. 그동안 쌓아온 믿음과 신뢰를 모두 잃은 처량한 신세로 전락된 것으로 느껴졌다. 남을 돕고 살지는 못할망정 물심양면으로 피해를 주며 민폐를 끼쳤다는 생각에 후회막급 하였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되었다.

  최전선 방문판매 영업활동을 약 3개월간 한 후에는 후선으로 물러서서 판매사원 모집, 교육훈련, 팀 관리 등을 주로 하였으나, 그 마저도 별로 탐탁한 일 같지 않아 1년여쯤 버틴 끝에 그만둬 버렸다.  

  그 일을 그만둔 후, 친구와 조그마한 중소기업을 경영하고 있을 때 였다. 이름 있는 모 그룹에서 잘 나갔던 대학동문 친구가 평소 별 접촉이 없다가 불쑥 찾아 온 일이 있었다.  그도 내가 경험했던 것과 같이 회사를 명퇴하고 나서, 방문판매사원이 되어 나를 찾아온 것이다. 나는 두말없이 백만 원이 훨씬 넘는 가전제품을 선뜻 사주었고, 그 업계의 선배로써 내 경험담을 들려주며, 가능하면 빨리 그 일을 털어 버리고 다른 일을 찾아보라고 조언해 주었다. 그 후 그 친구는 나를 만날 때마다 반색을 하며 고마움을 표했고, 드디어는 내 조언대로 그 일을 청산하고 다른 일을 시작했노라고 알려 주었다.

  여하간, 현재로서는 내 생애 두 번째 겪은 큰 낭패의 경험을 헛되이 하지 않고, 값진 교훈으로 삼고자 , 나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가급적 도와주기 위해 힘쓰고, 그들을 도와주지 못할 경우에는, 게으르다거나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다거나 하는 따위의 비난보다는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동정하는 마음을 갖도록 애쓰고 있다.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쳤던 뼈아픈 과거는 10년이 지난 지금에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그렁저렁 사라졌을 터이고, 나도 그 일을 잊고 지날 때가 많다.

  하지만, 그 당시 나에게 호의를 베풀며 도와주었던 친구들과 많은 분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은 잊지 않고 가슴속 깊이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2009년 11월 24일

   이 영 순

       

註: 누구나 부끄럽고 창피한 일은 감추고 덮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人之常情이다. 

     나 또한 과거의 허물을 감추고 싶지만 용기를 내어 글로 남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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