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내 생애 두번의 노숙

검선 2009. 10. 15. 00:04

                     내생애 두번의 노숙

 

     40여 년 전 대학 초년생 시절, 친구들과 일정이 맞지 않아, 혼자서나마 무전여행 한답시고 서울을 무작정 떠나, 기차를 몰래 훔쳐 타기도 하며, 경주 불국사를 거쳐 밤늦게 부산역에 당도한 적이 있었다.

      다음날은 제주행 배를 탈 계획이었으므로, 부산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수중에 여관비가 없지는 않았지만, 치기어린 마음에 경험삼아  역에서 하룻밤을 지내기로 작정하고, 대합실에서 시간을 때우려니,  온 갓 부랑배들이 모여들어 싸움판을 벌리는가 하면, 어떤 험상궂은 자는  나에게 다가와  "형씨! 담배 좀 빌려 주쇼" 하며, 담배를 주지 않으면 마치 한 대 칠 듯 위협하기도 하였다. 그게 어디 빌려 가는 건가? 요즈음  북쪽의 통 크다는 이가 써먹는 수법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시간이 좀 지나자 거지 왕초인 듯 한 자가 장내 질서를 잡는다고 모두 밖으로 내몰기 시작하였고, 나는 담배 몇 가피 상납하고 남보다 좀 더 버티다가 결국은 자정이 될 무렵 역무원한테 밖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거지 왕초와 몇몇 똘마니로 보이는 자들은 봐 주더만-------

      당시에는 자정 이후 통행이 금지 되었으므로, 나는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 되어, 비 내리는 여름밤을 우산도 없이 역 광장에서 오들오들 떨며 난생 처음 고생스러운 노숙자 노릇을 한 경험이 있었다.

 

      그 후 40년이 지난 2004년 6월초 어느 금요일 밤, 엘에이 공항에서  예기치 못한 노숙을 또 하게 될 줄이야!     

      여러 차례 경험해본 대로 라스 베가스 보석 전시회 참관을 마치고, 일행에서 이탈하여, 엘에이에서 며칠 더 머물며, 몇몇 거래 선을 방문하여 상담도 하고, 친구들과 골프도 치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나서, 금요일 아침 일찍 공항에 도착하여, 낮 12시 인천행 비행기를 탑승코자 수속 하노라니, 대기자가 너무 많아 좌석권 배정이 어렵다는 것 아닌가.

      그래도 어떻게 되겠지 막연히 기대하며, 어렵사리 여행가방 검사를 마친 다음 좌석권 배정을 기다렸으나, 종래 항공권만 돌려받고 말았다.

      그날 밤에 있는 다음 비행기 시간까지 반나절 이상을 보낼 일이 마땅 않아, 죽마고우인 좁쌀(이름 발음에서 따온 별명, 후에 개명하였으나 별명은 그대로 남아있다)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하고, 그가 근무하고 있는 사무실로 찾아 갔다.

      좁쌀친구 말로는 "요즈음 한국행 비행기가 방학을 맞은 학생들로 초만원이라 예약이 확정되지 않았으면, 좌석을 얻기가 만만치 않다"며, 내가 비행기를 못 탈 것으로 예견하고, 자기를 찾아오리라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나.

      좁쌀친구와 항공사 지점에 가서 알아보니, 삼일 간 쯤 연이어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공항에 나가서 대기하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고 한다.

       특히 주말에는 귀국편이 만원이라며, 자칫하면 일주일 정도 기다리게 될 수도 있다는 것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그날 밤 비행기에는 단 한 명의 대기자에게도 좌석이 주어지지 않았다. 좁쌀친구에게 나를 가까운  모텔이나 호텔에 데려다 주고, 그만 집에 들어가 보라고 하니, 날 혼자 놔두고  그냥 갈 수 없다며 날 밤을 같이 새우겠단다.

       미안한 마음에 귀가를 종용 하였지만 막무가내다. 과연 오랜 친구의 우정이 좋기는 좋았다. 여행 가방을 공항에 주차시켜 놓은 친구 승용차 트렁크에 실어놓고, 차안에서 이러저러한 얘기를 하다 보니, 50여 년 전 피난시절 얘기며, 학창시절 특히 대학입시 준비에 얽힌 힘겨웠던 얘기, 결혼 앞둔 자식들 얘기 등등, 수다스운 여인네들 뺨칠 만큼이나, 그동안 밀렸던 얘기들을 쏟아내느라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잠시 눈을 붙이고 나서, 다음날 새벽 일찍 공항 대합실로 나가, 한 칫솔로 양치질도 하고, 면도와 세면을 같이 하고 보니, 노숙자가 따로 없다. 나와 좁쌀친구는 말하자면 엘에이 공항 노숙자 동문도 된 셈이었다.

        간단히 햄버거와 커피로 아침식사를 때우고 나서, 좁쌀친구는 당일  낮 비행기 탑승도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다른 친구 맹물(키 크고 싱겁다 하여 부쳐준 별명)에게 나를 인계 하려는 듯 전화를 부지런히 거는 눈치였다. 멀쩡한 집 가까이 놔두고 이틀씩 연이어 노숙자 생활을 하기는 곤란하였을 게다.

       아니나 다를까, 친구 잘 못 둔 죄 밖에 없는 또 한 명의 속죄양, 맹물 친구가 공항에 나타났다. 좁쌀친구는 불쌍한 나를 맹물에게 인계 하고는, 드디어 팔자에도 없는 노숙자 생활에서 해방되었다는 듯 의리 없이 서둘러 떠나 버렸다. 그날 낮 비행기의 탑승여부도 알아보지 않고 말이다. 불과 한 시간 후면, 삼수결과 를 알 수 있었는데도 -------  아마도 장시간의 주차료가 부담되지 않았나 싶긴 하였다.

       두 친구 모두 나와는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 동문수학한 절친한 사이다. 그 중 한 친구는 노숙자 동문도 된 터이고-------

      그날 낮 비행기에도 크게 기대하지 못한 채, 자칫하면 맹물친구와도 하룻밤 더 노숙 할 각오를 하며 카운터에 가서 기다리니, 탑승자 명단 맨 끝 순번으로 내 이름을 부르는 것 이였다. 천만 다행이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맹물친구와의 또 다른 노숙 기회를 놓친 아쉬움도 어느 정도 남아 있었다. 시원섭섭하였다고나 할 까? 맹물친구와도 하고 싶은 얘기, 듣고 싶은 얘기가 많았으니까.  

             

      귀국 비행기를 언제 타게 될른지 몰라, 다소 불안하긴 하였으나, 오랜  벗과 함께 엘에이 공항에서 가졌던 따스한 노숙 경험은, 40여 년 전 학창 시절 일말의 공포와 추위에 떨며 홀로 부산역에서 겪었던 노숙 경험과 더불어, 아니 그 보다는 더 즐겁고 멋있는 추억으로 오랫동안 간직될 것이다.

 

                2008년 11월 

                이   영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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